미국과 중국, AI 패권을 둘러싼 지능 냉전의 진실은?
군사력에서 지능력으로 넘어가는 시대
20세기 냉전은 군사력과 핵무기를 중심으로 한 물리적 패권 경쟁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며, 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핵심 변수는 이제 ‘지능’—특히 인공지능을 누가 선점하고 활용하느냐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이제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AI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능 패권’ 냉전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AI 기술은 단순한 산업 도구가 아니라, 정보통제, 군사 전략, 경제모델, 시민 감시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권력 도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항공모함과 미사일이 패권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AI 칩셋, 클라우드 연산, 초거대 언어 모델이 국가 위상의 지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정말 미국을 추월했는가?
세계은행과 IMF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구매력 평가 기준(PPP)으로 이미 세계 최대 경제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물론 명목 GDP 기준으로는 여전히 미국이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생산력, 자원 소비, 제조 인프라 규모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중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는 데에는 점점 더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제조업뿐 아니라 첨단 기술 영역에서도 빠르게 입지를 넓히고 있으며, AI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중국은 정부 주도형 AI 전략을 채택하며, '신인프라(New Infrastructure)'라는 국가 정책 아래 방대한 투자를 단행해 왔습니다. 방대한 인구와 데이터, 강력한 도시 기반 시설은 AI 기술을 빠르게 실험하고 확장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합니다.
특히 딥시크(DeepSeek), 원스택(OneStack), 화웨이의 어센드(Ascend) 칩, 바이두의 아폴로(Apollo) 자율주행 플랫폼, 알리바바 클라우드 기반의 AI 서비스 등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과 기술적으로 대등한 경쟁을 펼치고 있으며, 일부 영역에서는 비용 효율성과 현지화 전략을 앞세워 오히려 경쟁 우위를 점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AI 생태계는 자국 내에 머무르지 않고,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의 신흥국 시장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미국산 시스템보다 저렴하고 빠른 도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환영받고 있으며, 현지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인프라 수준 자체를 끌어올리고 있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중국산 감시 시스템과 안면인식 기술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공공 안전, 교통 관리, 군사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 실전 배치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선 디지털 영향력의 확대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시스템이 중국의 통제 모델을 수출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AI 기술은 곧 외교적 도구이자 문화적 소프트 파워로 진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의 제재 정책, 세계의 반발을 낳다
이에 맞서 미국은 다양한 제재 정책으로 중국의 기술 성장을 억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공급망 차단 전략입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 기업들이 ASML(네덜란드), TSMC(대만), NVIDIA(미국) 등 글로벌 핵심 기업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강도 높은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첨단 노광장비(EUV)와 고성능 GPU가 AI 훈련에 필수적인 기술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이들 기술이 군사적 또는 감시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자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에도 제한을 걸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는 미국 정부가 AI, 양자컴퓨팅,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관련 투자 건에 대해 사전 검토 및 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는 기술이 단순히 상업적 목적을 넘어서 국가 안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특히 중국군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스타트업이나 연구기관과의 거래는 철저히 차단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시는 미국의 대중 기술 제재가 ‘AI 군사 응용 차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과 감시 위성 시스템에서 AI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근거로, 해당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핵심 부품 및 소프트웨어의 수출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또한, AI 기반 감시 시스템이 위구르 지역의 인권 탄압에 사용되었다는 국제 비판을 수용해, 관련 기술을 공급한 기업에 대해서는 제재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등 윤리적 기준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단기적인 억제 효과는 가져올 수 있을지 몰라도, 중립 국가들로부터는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예컨대, 인도, 브라질, 아랍에미리트 등은 미국 중심의 기술 블록화가 자국의 선택지를 제한한다고 우려하며, 중국과의 기술 협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재 정책은 때로는 자국 기업에도 피해를 주며, 글로벌 기술 협력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을 무기화하는 접근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술 발전을 정치적 블록 안에 가두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술의 개방성과 투명성, 그리고 다자간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개념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서구권에서의 중국 담론은 오랫동안 일방적인 위험 서사에 갇혀 있었습니다. 중국은 감시국가, 표현의 자유 제한, 인터넷 통제 등 부정적인 키워드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부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중국의 기술적 진보와 혁신 역량을 놓치게 만드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복합적인 시선이 요구됩니다. 중국은 단지 폐쇄적이고 감시 중심의 체제 국가일 뿐만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에서 실질적인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기술 강국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2022년부터 선전(Shenzhen)을 'AI 도시 시범지구'로 지정하고, 자율주행차량이 시내 곳곳을 자유롭게 달리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허난성 정저우에서는 의료 영상 판독의 80% 이상을 AI가 선별하는 병원 시스템이 도입되어 의료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농업 분야에서는 드론과 AI 센서를 활용한 스마트 농업이 내몽골과 동북 3성 지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기후 변화 대응과 식량 안보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속도전 전략으로, 시장 논리가 아닌 정책 드라이브를 통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산업화 속도는 미국을 앞지를 정도로 빠르지만, 동시에 인권 문제, 정보 통제, 표현의 자유 문제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됩니다.
일부 도시에서는 AI 기반 공공 감시 시스템이 범죄 예방을 넘어 시민 행동 분석까지 확장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단순한 흑백논리를 넘어, AI 기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명 전략의 가능성으로도 읽혀야 합니다.
즉, 중국은 하나의 정치 체제를 넘어, ‘AI 문명 실험지’로서 어떤 세계를 그려가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기술 우위냐, 혹은 미래 사회에 대한 하나의 실험 모델이냐에 따라,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도 달라질 것입니다.
기술 패권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미국과 중국 사이의 AI 패권 경쟁은 단순한 국가 간의 경쟁을 넘어, 인류가 앞으로 어떤 기술 문명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집니다. 더 많은 감시와 통제를 통해 효율을 얻을 것인가, 혹은 개방성과 창의성을 통해 협력 가능한 기술 생태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어느 한 쪽을 무조건 따르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각 모델의 장단점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그 중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지켜낼 수 있는 방향을 찾는 일일 것입니다. 기술은 반드시 정치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우리가 더 나은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기술을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