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더, 디지털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 미국 국채와 달러 패권의 교차점
테더와 국제 금융: 미국 국채와 기축통화 시스템의 그림자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투자자와 기업, 정부 기관들은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달러에 연결된 전혀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스테이블코인, 특히 테더(USDT)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금융 질서입니다.
이 글에서는 테더가 어떤 방식으로 국제 금융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것이 암호화폐의 미래와 기존 기축통화 시스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테더는 어떻게 미국 국채 보유 상위권에 올랐나?
2024년 말 기준, 테더는 보유 중인 미국 국채 규모 기준으로 세계 18위에 올랐습니다. 이는 전 세계 수많은 주권국가들보다도 많은 규모이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이처럼 거대한 국채 보유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국제 금융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습니다.
테더는 발행된 USDT를 통해 확보한 자산 중 일부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얻는 구조입니다. 단기 국채(T-bills)를 중심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는 테더의 유동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해주며,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암호화폐 발행 기업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사실상 테더는 일종의 디지털 자산 운용사로 기능하고 있으며,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이를 '디지털 뮤추얼 펀드'에 가깝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국채 수익은 테더의 준비금 안정성 강화와 함께, 기업 자체의 수익 모델로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구조가 테더가 전 세계적으로 통화처럼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USDT는 단순히 거래소에서의 거래통화 역할을 넘어서,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달러 대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미국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없거나 달러 실물 접근이 어려운 개인들이 테더를 디지털 달러처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송금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미얀마,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 등지에서는 테더를 통한 급여 지급이나 생필품 결제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즉, 테더를 구매하는 순간 미국 국채에 간접 투자하는 효과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투자자는 별도의 증권 계좌나 복잡한 환전 절차 없이, 스테이블코인 보유만으로도 미국의 안정적인 자산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특히 고환율 시대에 달러 기반 자산에 접근하기 어려운 개인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공할 수 있으며, 테더는 이러한 수요를 흡수함으로써 '디지털 달러 채널'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다지고 있습니다.
암호화폐는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
스테이블코인, 특히 테더와 같은 달러 연동 코인의 확산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암호화폐도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기축통화'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기축통화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무역 결제, 외환 보유, 자산 거래 시 기준으로 삼는 통화를 뜻합니다. 현재는 미국 달러(USD)가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경제력, 군사력, 금융 시스템 장악력,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테더는 이와 같은 '신뢰'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또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적 신뢰를 바탕으로 기존 기축통화 시스템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을까요?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를 넘어, 통화 발권력, 국가 권력, 금융 규제, 정치적 긴장감 등 매우 복합적인 이슈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전쟁의 본질은 '통화 발권력' 싸움
최근 유럽연합의 MiCA 규제, 미국 내 스테이블코인 입법 움직임,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CBDC) 확산 시도 등은 모두 '통화 주권'을 둘러싼 전략적 대응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각 국가는 자국 통화의 권위를 지키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화폐 인프라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MiCA(Markets in Crypto-Assets) 규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요건을 까다롭게 제한하고, 준비금 투명성과 발행자 등록을 의무화하여 시장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간이 발행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특히 테더나 USDC가 유럽 금융 시스템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로 해석됩니다.
미국에서는 정치권 내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의원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연방 은행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민간 주도의 디지털 달러(예: 테더)가 달러 패권 자체를 흔드는 상황을 우려한 조치입니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자체적으로 '디지털 달러' 도입 여부에 대한 검토를 지속하고 있어, 내부에서도 민간 vs 공공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은 한발 앞서 '디지털 위안화(CBDC)'를 공식 도입하고, 이미 수천만 명의 국민에게 실사용 테스트를 진행한 상태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기축통화 미국 달러에 대한 장기적 도전의 일환이며, 아시아·아프리카권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달러를 배제하고 위안화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니라,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권위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옮겨오는 디지털 전이 수단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누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통제하느냐가 국가 간 이해관계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테더는 단순한 민간 기업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존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국 국채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동시에, 달러의 유통을 전 세계로 디지털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비국가적 통화 발행자에 대한 견제로 인식하며, 규제 또는 차단의 형태로 대응하고 있기도 합니다.
테더는 기회일까, 경고일까? 한국 투자자들을 위한 시사점
앞서 언급했듯,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를 돌파하며 국내 투자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안정한 환율 환경 속에서, '디지털 달러'인 테더는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직접 달러 환전이 어렵거나, 미국 금융기관에 접근하기 힘든 투자자들에게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미국 국채 간접 투자가 유의미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테더 역시 투명성, 법적 지위, 규제 환경 변화에 따라 가격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는 리스크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투명성 측면에서는, 테더가 모든 준비금 내역을 실시간으로 공개하지 않거나 외부 회계 감사를 주기적으로 수행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은 신뢰를 잃고 대량 환매에 나설 수 있습니다.
법적 지위 측면에서도, 테더가 특정 국가에서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불법 금융 상품으로 분류될 경우, 해당 지역에서의 서비스가 차단되거나 회수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규제 환경은 더욱 복잡합니다. 하나의 예는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수준의 라이선스'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규제할 가능성입니다. 이 경우 테더는 구조를 전면 수정하거나 미국 시장에서 철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예는 유럽연합의 MiCA 규제처럼, 준비금 보유 방식과 발행자 등록을 엄격히 제한하는 정책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확산될 경우, 현재 방식으로 운영되는 테더는 주요 거래소에서 퇴출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 무조건 안전하다'는 인식은 경계할 필요가 있으며, 마치 달러를 사용할 때에도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해야 하듯, 테더 역시 국제 금융의 흐름과 규제 동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결국 테더는 기축통화의 디지털 그림자이자, 동시에 달러 패권과 암호화폐 사이의 충돌이자 교차점에 선 상징적 존재입니다. 이 글이 그런 배경 속에서 스스로의 포지션을 점검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